바람이 분다, 가라, 생의 잔혹함이 몸을 파고드는 그 순간에
밝고 쾌활한 인주,
자살시도를 한 자신을 살뜰히 돌봐주었던 인주,
절대로 자살을 하지 않을 것 같은 강인한 인주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정희는 믿지 못한다.
정희는 인주를 자살자로 만들어 알리려 하는 석원을 찾아가 싸울 것을 다짐한다.
엄마의 자살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식, 조카인 민서를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정희가 그렇게 약한 존재라는 것을 죽어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 인주는,
자신의 엄마와 같이, 삼촌과 같이,
자신의 엄마와 같이 부서질 것 같은 정희와 같이,
자신의 삼촌과 같은 병에 걸린 민서와 같이,
나약한 것들에 한 없이 불안해하다가 으스러져 갔다.
(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 인주가 석원과 함께했던 이유도
석원이 가진 나약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휘귀병에 걸린 동생을 위해 죽도록 일하며
동생의 병원비를 위해 그 시절 중앙정보부 간부인 학생 아버지에
벌벌 떨며 상황이 어려워 지금 당장 수업료를 달라던 당시 20대였던 엄마 동선처럼,
항상 불안해하며 술을 입에 달고 살던,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 동생과 태어날 딸을 위해서 모진 마음을 먹었던,
그 죄책감으로 평생 허우적댔던 엄마 동선처럼,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동선/인주는 겉보기로는 강인해 보였지만,
나약한 것들에 나약한,
그래서 가장 약한 존재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 미시령,
9살의 동선이 어른들의 밀침과 엄마의 버림으로,
곧 절벽으로 떨어질 듯한 버스에서 홀로 남아 생사를 오고 갔던 그곳,
동선이 천사의 빛이 자신을 구원해 주었다는 그곳에서
인주는 자살을 했다.
정희 역시 집안의 차별을 받는 딸이었고
폭력적인 남편을 만났으며,
자살 시도를 했지만,
죽어야 할 것은 인주가 아니라 자신이라 했지만
끝내 살아남았다.
작은 체구에 쉽게 구부러질 것 같았던 정희는 나약함이 죄의 시작이고,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했지만
키가 큰 운동선수 출신이었던 인주는 자신의 엄마인 동선과 같이 나약함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바람이 분다, 가라 가라에서
"언제고 자신의 다리를, 목숨까지 꿰뚫을 수 있는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다는 게
무섭도록 분명하게 느껴지는 순간,
혈관 속으로 바람이 빌고 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바람이 부는 순간 인주는 죽음을 택했고
정희는 인주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내다가
종래에는 기어코 스스로 숨을 다시 내쉬었다.
만약 인주의 삼촌이 좀 더 살았다면.
정희가 일상적으로 정희를 무시했던 남자,
끝내 폭행했던 남자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인주의 운명은 바뀌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간은 모두 약하다.
그러나 해야 할 것이 주어지는 순간,
거부할 수 없는 동력이 생기는 순간, 광적인 열기로 강해진다.
.
* 바람이 분다, 가라 안에서 다루어진 우주 별 이야기도 아름다웠다.
사실 모든 게 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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