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검은사슴, 결국 검게 물들다 태워지는 것은 아닐까
1. 한강 검은사슴 - 주요 인물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이야기
한강 검은사슴은 어린 시절 언니를 잃은 인영과 동생을 잃은(마지막에는 가출했던 명아를 찾지만) 명윤이
의선의 흔적을 좇는 과정을 통해 종래에는 상처를 극복하는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장도 아내가 집을 나가고 불에 집에 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방황을 멈출 것이라는 예상도 들었다.
장이 병을 숨기고 자신을 떠난,
끝까지 자신의 병과 죽음을 장에게 알리고자 하지 않았던 전부인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던 것,
폐광촌을 떠나게 된 광부가 자신이 했던 일을 아이들에 보여주고 싶다며
장에 광산이 나오는 잡지가 언제 나오냐며 물어보았던 일,
기차 터널 사고가 났다던 인영이 생존한 것,
인영 병실에 놓인 사진 속 임의 딸로 보이는 여자가 생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 등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느끼게 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은 진짜의 삶, 죽음의 위기를 무릅쓰고 생존한 광부들을, 처절히 살아가고자 하는 아내를
사랑했으며 빛으로 남기고 싶어 했던 것 같았다.
2. 한강 검은사슴 - 어둠에 반하는, 어둠을 싫어하는 공통점이 있었던 존재들
검은 프라이팬에 올려진 노란 살덩어리,
눈앞의 내일을 위해, 병과 죽음으로 어둔 갱안으로, 쉬지 않고 걸어 나갔던 광부들,
폐광을 떠나지 못한 채 남루한 생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폐광이 관리되지 못한 이유로 '언젠가 났을 터널 사고'에 불운한 당사자가 되어 죽거나 다친 사람들,
광산 사고로 첫 남편을 잃고 미쳤던
남편의 동료였던 임씨가 거두어 그와 함께 살게 되었으나, 기어코 집을 떠나 버렸던 의선의 엄마,
의선의 엄마를 찾아 의선과 의선의 오빠를 방치하며 떠돌아다녔던 임씨,
어둔 골짜기를 벗어나고 싶었던 의선,
어둡고 궁핍한 것을 싫어하며, 가출한 명아와 닮았던
빛을 좋아했던 의선의 행적을 끝까지 좇았던 명윤,
스스로 어둠 속을 깊이 파고든 인영까지,
모두 다 어둠을 혐오했던, 싫어했던 존재들이라 느껴졌다.
한강 검은사슴에서 인영만은 불 꺼진 암흑을 진심으로 좋아한 듯 보이기도 했지만,
엄마와 언니가 모두 바빠 저녁에 홀로 있던 유년 시절에,
숙제 등을 느릿하게 했다는 것에서 그 어둔 공백을 처음부터 좋아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인영 언니 민영이 처음으로 친구들과 갔던 제주도 여행에서,
사고 난 배에서 자신 곁에 있던 구조 조끼를 친구에 내어주며 그 대신 죽은 이후,
언니와 같이 타인을 위한 마음으로 죽지 않으리라, 다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어둠에 파고들며 다른 사람에 곁을 내주지 않게 되었던 것이라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에 금이 가게 했던 의선을 내심 부담스러워하며,
결국 의선을 쫓아내었던 것으로도 볼 수도 있지만,
의선을 찾는 일에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실은 누구보다도, 어쩌면 명윤보다 더, 의선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3. 한강 검은사슴 - 역설적으로 그들 역시 검어지는
먼저 끊어진 연이 모인다는 연골에서는,
연을 모아 불을 태우면 봄이 시작된다고 했다,
연이 태워지면 검은 재가 남을 것이다.
그리고 검은 재 뭍은 광부들은, 갱에 들어갈 때마다 검은 사슴을 볼 수 있기를 소원했는데,
검은 사슴과 마주치면 사슴에 하늘을 보여준다는 것을 약속하고 사슴의 뿔을 뽑고,
이후에는 강제로 이빨까지 뽑았다고 했다.
검은 광부들은 검은 피를 흘린 사슴을 보며 도망쳤다고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기어코 생존해 바깥으로 기어 나오는 데 성공한 흐물어질 듯한 검은 사슴,
평생의 소망대로 하늘을 보게 된 사슴은,
햇빛에 녹아 연분홍빛 액체를 남기는데, 그 액체가 풀/꽃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또한 한강 검은사슴에서 의선은 쪽머리를 하고 흰 옷을 입은 여자를 횡단보호 반대편에서 보고 그를 따라가다가
옷과 스타킹들이 죄여와 옷가지들을 모두 벗었다고 했다.
그러자 흰 여자는 사라지고 자기 몸이 태양에 분홍빛으로 녹은 듯했으며
도망치라는 이명이 들려왔다고 했다.
검은 남자/경찰들이 자신을 따라왔다고 했다.
이러한 부분들을 볼 때, 검은 것에 반하는 존재들,
검은 것들에 의해 죽어나가는 존재들 역시,
햇볕과 같은 꿈을 좇아,
스스로를 결국 검게 물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태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산이 무너져 어둠 속에서 생사를 넘나들다 결국 생존한 광부들에,
기차 사고로 죽을 뻔했었던 생존자들에 터졌던 카메라 셔터*섬광처럼,
그리고 검은 사슴이 자기 뿔을 내주고서라도 마주하길 원했던 하늘처럼,
우리는 그 찰나의 빛을 꿈꾸며,
어둡고 잔인한 삶을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검은 사슴처럼 자신과 같은 이들에 뿔과 이빨이 베어져도,
눈이 녹아진 물마저 살쾡이에 착취당해도,
결국 사람에게 먹힌다 해도, 잠시라도 빛을 받는 풀과 꽃이 되려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는 배 사고가 난 후 민영이 멀리에 떨어져 있는 빛이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 오인하고 무모한 희망을 가진 것처럼, 인영이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정윤을 부축하고 길을 나서면서 폭설에 모든 것이 잠긴 듯 한 연골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섣불리 판단했던 것처럼, 우리는 끝내 닿을 수 없는 그곳/꿈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강 검은사슴, 결국 검게 물들다 태워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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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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