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흔적(편협한 소관)
카후쿠와 그의 아내 오토, 둘 다 성서로운 이름으로 서로에게 끌렸다는 대목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른 작품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로의 순례를 떠올리게 했다. (이 작품에도 주인공이 속한 공동체, 최상의 케미스트리를 구현한 그 단체에서 다른 인물들의 이름은 색채를 가지고 있었고 오직 스쿠만 색채가 없었다. )
그리고 정말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성과 관련한 부분들이 상징적으로 많이 보인다. 약 15년 전이었나 정말 어릴 때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상실의 시대를 읽는데 시대의 아픔이고 뭐고 그런 건 하나도 모르겠고 야한 부분이 정말 많다고만 생각하기도 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오토의 불륜, 난잡한 성관계는 죄악이지만 그녀의 성행위는 창작을 위한 하나의 의식으로도 보였다. 아이를 떠나보낸 후의 상실로 배우를 그 만두고 시나리오를 시작한 것이지만 아이를 잃은 상실감으로 불륜을 했다기보다 창작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성관계의 절정에 다다랐을 때 나중에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무의식적으로 이야기를 내뱉는 오토 창작법, 그녀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남편인 카후쿠와의 관계로만 만족했으면 좋겠지만 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이 그러한 관계를 부축였을 것이다.
전생에 칠성상어였던 여학생의 이야기
오토는 카후쿠와 성행위를 하며 한 이야기를 만든다. 그 이야기는 어떤 여학생에 대한 이야기다.
"여학생이 짝사랑하는 남학생의 집에 침입한다. 남학생과 그 가족들 몰래 비어 있는 시간에 몰래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남학생 방에서 남학생을 느낀다. 혼자 성행위를 하고 싶은 충동도 느낀다. 그러나 그런 충동을 참아낸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이 전생에 칠성상어였다는 것을 깨닫고 남학생의 방 안에서 혼자서 성행위를 해버린다. 그때 누군가가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당황한다. "
카후쿠가 들었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 이야기는 분명히 오토 자신과 카후쿠와 관련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잘못을 한 여학생은 오토 자신, 그리고 남학생은 카후쿠라고 보면 오토는 본인의 잘못을 들키고 싶은 아니 카후쿠가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이젠 화를 내줬으면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후 다카스키에게도 같은 말을 전해 듣는다.)
오토는 결국 자신의 불륜을 카후쿠에 말하고자 새삼스레 카후쿠에 저녁에 함께 이야기하자고 한다. 카후쿠는 오토의 의도를 짐작하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 오토와의 관계가 변할까 싶어서 두려운 마음에 퇴근을 하고도 한 참을 헤매다 집에 들어간다. 그때 오토는 지주막하 출혈로 쓰러져 죽어 있었다.
이후 오토의 불륜 상대 중 한 명은 다카스키에게 자신이 들었던 오토의 이야기의 다음 부분을 전해 듣는다.
"여학생이 남학생 집에서 혼자 성행위를 하고 있는 중 올라오고 있는 누군가는 남학생도, 남학생의 가족도 아닌 제3의 침입자였다. 반나체로 있는 여학생을 발견한 그 침입자는 여고생을 강간하려고 했고 여학생은 그 침입자를 죽인 후 샤워까지 마친 후에 남학생 집에서 나간다.
이후 자신의 죄가 당연히 드러날 것임으로 마음을 굳게 먹고 있던 여학생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남학생은 평소와 같게 행동을 한다. 여학생은 다시 그 남학생 집에 가지 않는다. 그러다가 남학생 집 앞에 가보는데, 그 집 앞에는 시시티브이가 세워져 있었다. 여학생은 자신이 변화시킨 것은 시시티브이뿐이었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시시티브이를 바라보며 큰 입모양으로 '내가 죽였어'라고 말을 한다. "
그리고 다카스키의 이야기는 정말 오토가 한 이야기인지,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인지는 정확히 확신할 수 없다. 아마 오토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섞여서 만들어 낸 이야기일 것이라 짐작한다.
각종 여성편력을 가진 배우, 자신의 감정과 본능을 제어하지 못하는 다카스키의 최대의 적은 자신과 그의 치부를 세상에 밝혀지게 만든 도구인 카메라였을 것이다. 그래서 카후쿠와 술자리에서 마저도 셔터 찍는 소리가 나면 이를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결국 그로 인해 상해치사의 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그의 죄의 증거도 역시 카메라, 공원의 시시티브이였다.
드라이브 마이 카
아내의 죽음 이후 카후쿠는 '바냐 아저씨'를 연기할 때 아내에 대한 감정을 실어 담아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연출만 하게 된다.
아내의 죽음 후 2년, 히로시마에 연극 연출을 하러 건너가면서 '드라이브 마이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전에도 카후쿠가 15년 된 애착하는 본인의 차를 운전을 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내포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아내가 녹음해 준 '바냐 아저씨'를 듣는 것이 깨지지 않는 루틴이었다. 아내가 운전을 대신하기도 하며, 오토의 불륜을 목격하고 운전하다가 차 사고가 나기도 하지만 드라이브 마이카는 이 시점, 미사키를 만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카후쿠는 처음에는 미사키에게, 아니 다른 사람에게 자동차 운전을 맡기는 것을 거부했지만 뛰어난 미사키의 능력으로(실은 상처로 만든) 그녀를 인정한다. 윤수와 유나의 집에 갑자기 초대되어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중, 감정이 없던 것만 같던 미사키는 용기 있는 윤수/유나의 삶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의 운전실력에 대한 카후쿠의 극찬에 감정을 들키기 싫었는지 식탁 아래에 내려와 윤수/유나의 개와 함께 기쁨을 나눈다.
어느 날 카후쿠는 미사키에 히로시마에 볼 게 있는지 묻고 미사키는 핵 폐기장으로 카후쿠를 데려간다. 날리는 핵 폐기물을 보며 미사키는 '눈이 내리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떻게 히로시마에게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카후쿠에 질문에 솔직히 답한다. 미사키가 살던 집 뒷 산에서 산사태가 났고 이때 엄마가 죽고 자신만 살았고, 이후 하나뿐인 자동차를 타고 나왔는데 마침 히로시마에서 차가 고장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운전뿐이라 운전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어 자신이 운전을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일하는 엄마를 위해 중학생 때부터 장거리 운전을 했는데 엄마에게 맞지 않기 위해서는 엄마의 잠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게 해야 했음을 말이다.
그리고 달리는 차 안에서 다카스키에게 오토에 대한 이야기, 오토가 만든 이야기를 함께 듣는다. 미사키는 카후쿠에게 온통 거짓뿐인 사람과 (그녀의 어머니) 살아봐서 안다며 다카스키의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카후쿠는 자신의 딸이 살아있었다면 미사키와 같은 나이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함께 차 안에서 담배를 태운다. 차 지붕에 나란히 뜬 두 담배 불덩이는 붉게 탄다. 이때부터 뒷좌석에 있던 카후쿠는 보조석에 미사키와 나란히 앉는다.
이후 다카스키가 구속되고 본인이 바냐 아저씨 역할을 한 것인지 공연을 중단시킬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카후크는 조용한 곳, 미사키의 고향에 가보자고 제안하고 이 둘은 미사키의 고향을 향해 달린다.
미사키의 고향을 가는 길에 산사태에서 엄마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을 가진 미사키, 할 말이 있다던 오토의 말을 듣고 집에 늦게 들어가 죽은 오토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 카후쿠는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한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거라고.
하얀 눈이 뒤덮인 미사키의 고향 마사키의 집이 있던 곳은 이미 철거가 되어 구조물 만이 쓰레기처럼 구덩이에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구덩이에 꽃을 던지는 미사키가 이전 장면에서 폐기물이 눈 같다던 미사키의 모습과 겹쳐졌다. 슬픔을 아무렇지 않게, 아름답게 견뎌내는 것이 그녀의 삶의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그곳에서 미사키는 자신의 엄마가 정신병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미사키 엄마는 엄하고 폭력적이었지만 미사키를 때리고 나서는 또 다른 인격 같은 다정한 '사치'가 되어 함께 퍼즐 놀이를 하며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런 사치를 미사키는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또 카후쿠에게 오토가 카후쿠를 사랑함과 동시에 다른 남자들에 대한 욕망을 갖는 것은 어떤 모순도 거짓도 없는 것이 아니냐며, 자신의 엄마와 같이 복잡한 것은 아니지 않냐며 카후쿠에게 묻는다.
카후쿠는 울며 자신이 오토에게 화를 냈어야 했다며, 겁이 이 나서 그렇지 못했다며, 그래서 오토를 잃어버렸다며 후회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표출한 미사키와 카후쿠는 서로를 안으며 상처를 극복한다.
연극
카후쿠의 차 안에서는 항상 바냐 아저씨의 대사가 나왔다. 그 대사들은 묘하게 오토와 카후쿠를 암시하고 있었다. 오토의 죽음 이후 바냐 아저씨 연극을 하며 아내에 대한 감정을 쏟아내 더 이상 연극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히로시마 연극제에 다카스키에 바냐 아저씨 역할을 주다가 결국에는 카후쿠가 그 역할을 맡게 된 것도 카후쿠가 오토에 대한 상처를 극복한 것, 자신의 자리를 되찾은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카후쿠는 연극에서 '무언가 느껴지는 것'을 강조했다. 대사를 주고받는 상대방과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그 무언가를 관객에게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연극의 설정도 말이 통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인간의 감정, 본연의 것이 있으며 이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카후쿠는 다카스키에게 대사에 온 몸으로 응답하라는 조언도 했는데 인상 깊었다.
마지막 연극 장면, 유나가 바냐 아저씨인 카후쿠를 위로하는 장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에서 유나는 카후쿠에게 고통 속에서도 삶은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며, 때가 되어 조용히 죽으면 천국에서 그동안 겪었던 고통을 말하면 하늘이 기특히 여겨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장면에서 무대에 있는 카후쿠/유나와 객석에 앉아 있는 미사키의 모습이 교차된다. 여기서 세 사람의 '무언가'가 발생한다.
결말
마지막 장면은 미사키가 한국의 마트에서 장을 보는 장면이다.
장을 본 미사키는 주차장에 있던 '카후쿠 차'를 열어, '유나의 개'가 앉아 있는 뒷좌석에 장바구니를 넣고, 다시 운전석에 앉아 개를 예뻐한다.
그리고 미사키/카후쿠의 차가 한국의 도로를 질주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이 난다.
미사키가 윤수/유나, 카후쿠와 함께 한국에 놀러 왔나 잠깐 생각해봤지만 그렇다면 장 보는데 굳이 개를 굳이 데리고 올 필요도 혼자 다닐 필요도 한국말을 그렇게 능숙하게 할 필요도 없다. 쿠키영상이 더 있길 바랐지만 그것으로 끝이 났다.
이 마지막 장면으로 드라이브 마이 카의 진짜 주인공은 미사키였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미사키가 카후쿠, 윤수/유나와 함께 하며 얻은 많은 것들이 '차' 와 '개로'써 미사키와 언제나 함께하며 미사키는 새로운 인생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배우들
매력적이다. 여성스럽고 하늘거리는 아름다운 오토, 여러 문제가 있지만 매력적이고 잘생기긴 한 다카스키, 말이 없고 감정 내비침 없이 시니컬한 미사키, 단정하고 예쁜 부부 윤수와 유나. 똑 부러지는 요정 재니스 창, 그리고 누구보다 인간적인, 능력 있고 강해 보이지만 여리고 겁 많은 카후쿠 모두 다 매력 있었다.
연출
내가 감히? 뭔지는 모르지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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