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신앙
사랑도 신앙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죽은 존재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신은 있다고 믿는 것처럼,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고 믿는 것이 절대 잘못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세상과 타인들에 그를 강요해서는 안 될 뿐인 것이지.
이러한 사랑, 신앙은 개인의 세상이 된다. 사랑뿐만이 아니라 어떤 신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적인 어떤 것
남은 가족들을 위해 시체로 세상에 남아야 하는 존재에 대한 생각은, 이 이야기에서만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뇌사의 반작용을 일으켜 자신이 살아있다고 엄마가 믿게 했던 것은 인어이기 때문이다. 또한 엄마의 꿈에 나와 고맙다고, 자신은 행운아였다고 마지막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가족들 뿐만 아니라 우리 인어도 그때까지는 가족과 이 세상을 떠나보낼 준비가 덜 돼있던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 인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이것도 보이지 않는 영적인 어떠한 것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 어떤 식으로는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에 마음을 전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죽은 자가 움직이고, 웃게 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인, 비인간적, 비이성적인 부분도 사람들을 너무 옭아매지 않되 행복하게 해 준다면 어느 정도 허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VR로 복원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죽음의 기준
심장이 뛸 때인가 뇌가 정지될 때인가. 뇌사 상태의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인가 아닌가. 죽는 자에 대한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신체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의 마음 안에서 다른 사람이 없어지고, 죽기도 하니 죽은 자가 아직 살아있다고 느끼고 믿는 것도 다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것이기에 굳이 그 기준이 필요한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객관적인 법, 제도 상의 것은 제외하고
만약 그랬더라면
놀이터에서 함께 다른 친구들과 뛰어노는 인어를 상상하는 엄마의 모습에 마음이 미어졌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도 만약 그랬더라면은 언제나 서글프고 아리게 한다. 매번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거지만 그렇다.
우리 인어
본인은 충분히 행복하니 다른 사람을 위해 네잎클로버를 남겨줬던 인어는 비극 그날, 수영장에서도 사촌언니를 대신해 반지를 배수구에서 빼내 주려 했다가 뇌사에 빠졌다.
이렇게 착한 인어는 결과적으로는 끝내 이혼 소송 중에 있던 아빠와 엄마를 결합시키고 동생과 잘 지내도록 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인어는 비극의 그날 아침, 엄마에게 자신이 엄마를 데려가고 싶은 곳이라며 놀이터에 있던 나무 고목 그림을 그려주고 떠났고, 끝내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는 가족들이 함께 그곳을 발견하게 해줬다. 정말 인어는 엄마와 아빠를 위해,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살아 숨 쉬다가 거품처럼 날아간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치 그를 위해 태어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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