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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얼빈 후기, 역사가 되기 이전의 생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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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슬슬 2025. 1. 1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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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얼빈 후기, 역사가 되기 이전의 생과 사

 
 
역사 이전,  사람의 생과 사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칼바람이 드리치는 추운 겨울, 칼로 베고 죽이고 또 맞고 다치고, 세상사를 논하기 이전에 앞서 사람의 삶과 죽음, 극한의 공간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더 가까이서 지켜본 기본이었다.
 
이토록 인간적이며 포용적인, 두려움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스크린으로 본 적이 있던가를 생각해 보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처자식이 있다는 말에 적군을 풀어주고, 밀정을 끝내 용서해 주는 독립운동가.
 
물론 범인과는 당연히 다르기야 하겠지만, 그들도 죽음에 대한, 특히 가까운 이들에 대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는 것, 방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것, 인간이기에 당연히 그러했을 것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위대한 인물들과의 거리가 이전보다 상당히 좁혀진 느낌이었다. 
 
"살고 싶었다."
 
살이 찢어지고, 몸이 베어나가고, 숨 막혀 질식해 나가는 상황에서, 살기 위해 동지를 내어 놓으며, 적이 준 고깃덩이를 손으로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울음을 터트리는 자를 동정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안위를 위해 변절을 하고 밀정자가 된 이들을 이전에는 비난만 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그들이 더욱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라 원초적인 생존 본능에 의한 것,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면 나는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만한 자격도 용기도 없기 때문이다.
 
몸이 처참히 부서지더라도 신념과 의리와 절개를 지키는 것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것뿐이다.
 
그리고 밀정자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용기를 가질 때까지 기다려주니, 기어코 성장하여 다시 더욱더 강력한 독립운동가가 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들 중 수많은 이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다치고 싸워가며 더욱더 강력해지면서 우리가 아는 위인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추측도 감히 해보았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 이후의 시점에서 부터의 위인들을 조명했기에, 그들에 이질감 더 나아가 영적인 신성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사형 장면으로 끝난 부분도 좋았다. 앞이 보이지 않고 숨 막히는 두려운 죽음의 순간, 마지막으로 내쉬는 한숨. 그들이 내쉬었던 숨결은 우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그래서 더욱더 위대한 것이라 느껴졌다.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숨과 고통의 값을, 기억하고 기리는 헐값으로, 길이길이 응당히 치르며 채워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 밖에도 살얼음판에서 사막으로, 다시 살얼음판에서 해가 뜨는 곳으로 이동하는 장면도 좋았다. 사막에 드리워진 독립운동가들의 그림자가 거대해 보였던 것, 해질녘이지만 해가 떠오르는 듯 보이는 장면도 좋았다. 
 
역사 영화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감탄했다.
 
사실 소설이 원작인 줄 알았는데, 그냥 동명이었던 것 같다. 가장 크게 다르게 느껴졌던 부분은 여러 인물과 설정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우형의 모습과 주인공이 이토를 죽이고자 하는 동기가 분명하게 도드라졌던 부분이었다. 소설에서는 가족/종교와 연관된 부분도 나오는데, 생각했던 내적 갈등 포인트도 살짝 달랐던 것 같다. ( 물론 소설에서도 세상을 더 앞세운 완고한 신념이 있어 주인공이 내적 갈등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둘 다 좋다. 
 
기분전환 진짜 제대로 됨 ㅠㅠ
 
 
영화 하얼빈 후기, 역사가 되기 이전의 생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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