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욕망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길인 가. 인간의 본능을 억지로 억제하고 통제하는 것이 타인으로부터의 위협을 막고 자기 주도권을 취득하는 것 인가, 생을 이어나가고 싶은 본능 역시 욕망에 포함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타인에게 살해를 당해도 그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도 있어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테디가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도 돈이 화장살을 가는 것을 허락받도록 한 것, 그에 더 나아가 아직 안 된다며 통제하려 했던 것 역시 이율배반 적으로 느껴졌다. 아마도 사회활동에 어려움이 있는 듯한 돈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욕망을 없애는 것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영화 부고니아에서 태디는 벌집 군집 붕괴를 막아야 한다면서, 개인적으로 느끼기로는 무정부주의를 추구하는 것 같아 이 부분도 괴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부고니아에서 미셀 역시 벌의 밀집/군중 체제의 반대 방향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먼저 미셀은 방송 인터뷰를 통해 다양성을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보다 더 다양하게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샐은 이 과정에서 다양성이란 단어가 대사에 너무 많다며 직원에 반복되는 단어를 다른 것으로 교체할 것을 지시했는데, 직원은 다양성을 대중의 뇌리에서 학습되도록 한 것이라 변명했다.. 이에 따라 뇌파에 의한 지배도 실제 가능할 것 같아 약간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직원들에 다섯 시 반 퇴근을 공지하는 모습 (실제로는 남을 일이 있는 사람은 하고, 회사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고, 라는 말을 덧뿐이며 말뿐인 듯한 선심으로 보였지만) 역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벌들 / 군집 밀집 집단 체제와 상반됨이 느껴졌다.
결국 안드로메다에서 최후의 방법으로 황제인 미셀이 직접 내려와 지구를 살폈으나, 인간들의 악습으로 인해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지구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제거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미셀이 자기와 같은 테디의 모습을 마주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와 같이 실험을 하듯 생명체들을 잔인하게 살인//고문하며 절단된 신체를 투명한 유리병에 넣어 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는데, 임상실험 형태로 사람을 죽이는 자기와 같은 인간 테디의 모습에 모든 것이 질려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러다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다. 벌 군집 붕괴 현상에 정말 미셀의 영향을 미쳤을까? 미셀은 개별화/다양화되는 세상을 추구하는 듯한데 그것이 종말의 원인이 되었을까? 근데 죽은 사람들은 모두 다 서로 함께 있었는데? 무엇이 진짜 문제였을까. 생각하다가 미셀이 인간들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안드로메다에서 왔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당시는 허황된 말이라고 생각) 즉 일률적/군집화된 생활에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을 막기 위해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자 퍼즐 조각이 맞추어진 기분이었다.
이렇게 되면 미셀이 지구를 멸망시킨 것에 돈의 자살이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미셀이 핵폭발 이후 노아의 방주 운운하며 막 떠들 때 헛소리를 아주 맘대로 지껄이는구나 했는데, 옷장과 계산기로 외계인과 접선한다는 미셀의 말을 믿는 테디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는데, 그게 다 사실이라 너무 놀랐다. 심지어 테디가 미셜이 안드로메다 최고지도자인 것도 맞췄었다! 이 밖에도 머리카락의 기능 등 여러 부분에서 테디가 적확했음을 끝 부분에서 알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미셀과 테디가 난투극을 벌였던 것이 멀리서 잡힌 구도로 성적인 행위를 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벌들이 꽃가루를 옮기는 것이 연상됐다. 자연스러운 일.
영화 부고니아는 개인적으로 참 어려운 영화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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