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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투라 신인상 공모전 결과 참여 후기 낙선작 소설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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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슬슬 2025. 1. 2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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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투라 신인상 공모전 결과 참여 후기 낙선작  소설 단편소설
 

 
 
나무가 살아가는 섬, 그리고 낙원
 
 
하나뿐인 소망의 잎이 추락하면, 나는 몸을 꺾어 그 다친 초록빛 꿈을 주워들어요.
힘겹게 높이 들어 올려요. 그리고 다시 바라보아요. 나는 움직일 수 없어요.
쿨투라 신인상 공모전 결과 공모 참여 후기 낙선작  소설 단편소설

지은은 오늘의 표현으로 위 문장들을 썼던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생각했다.
 
지은 앞에는 얇지만 굳건한 철로 된 울타리가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벼락이 그 울타리로 떨어졌다. 지은의 아버지가 얼마 전 치매에 걸렸다.
 
이제 지은이 가녀린 팔다리로 온 힘을 다해 집을 지켜왔던 아버지를 대신해야 했다. 고장이 난 울타리 앞에 서야 했다. 밖으로 나가 야생의 칼바람과 대적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은은 울타리 사이에서 튀어나온 앙상한 나뭇가지에 불과했다.
 
나뭇가지는 쉽게 다뤄졌다. 부서졌다. 그 책임을 누구도 지지 않았다. 비쩍 마른 나뭇가지 하나 꺾는다고 벌을 받지는 않으니까 당연한지도 몰랐다. 남고생들이 자신들에 담배를 팔지 않는다며 편의점을 난장판으로 만든 벌을 지은이 받았다. 안 되겠다며 그날로 잘렸다. 운 좋게 들어간 사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그랬다. 성범죄를 당했다. 온 정신과 마음이 파열됐다. 쓰레기장이 된 것 같았다. 몸을 누르면, 말을 하면 오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피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그러나 비린내에 온갖 벌레들이 서슴없이 꼬여 들기 시작했다. 신고하면 역고소하겠다고 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은 길가에 덩그러니 버려진 나뭇가지에 불과했으니까.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가해자들은 그 이후로도 엉겨 붙어 스토킹했다. 조롱했다.
 
이후 지은은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했다. 하다가 쓰러졌다. 힘없는 지은이 사람들에 질려 마지막으로 시도해 본 일이었다. 더 이상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가족들이 보기 싫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거실에 서서 소변을 누고 있는 아버지를, 그를 말리며 울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볼 수 없어 눈을 돌렸다. 벽에 걸린 사진 액자 속 아름답고 젊었던 두 사람의 결혼사진이 보였다.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본인 자신이. 지은에게는 그들이 가졌던 최소한의 행복도 허락되지 않을 것 같았다.

지은은 오빠에게 연락해 보았다. 오래전 연락이 끊겼지만, 뭐라도 해봐야 할 것만 같았다. 오빠는 불우한 환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남편, 사위가 되어 외국으로 옮겨갔었다.
 
지은은 내일이 겁났다. 몸이 떨렸다. 자려고 애써도 잠에 들지 못했다. 더 이상 울 힘도 없었다. 일어나 집을 나왔다. 걸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거리를 오래도록 눈에 담고 싶었다. 불어오는 밤공기, 새벽임에도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도시의 소음들도 애틋했다.
 
지은은 한강 다리 앞에 섰다. 지은에 있어서 강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검은 물, 쓰레기가 담긴 오물이었다, 하늘도 마찬가지였다. 새까맣게 자신을 억누르는 것 뿐이었다. 반짝이는 별로 물든 하늘은 어디선가에서는 볼 수 있겠지만, 지은에게는 소설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저 멀리 반대편에서 보이는 밝은 조명들도 그 거리만큼 지은과 멀었다. 지은은 조명처럼 빛난 적이 없었다. 그 빛 아래에 접근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나마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만족했다. 미룰수록 더 늙고 가난한 죽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은은 난간을 억척스레 넘어가며, 자신이 죽음마저 추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 가지 않는 주인공의 더럽고 불쾌한 결말이라 자조했다. 지은은 자신이 썼던 마지막 오늘의 표현을 떠올리며 추락했다.
 
 

무서워요. 차라리 차가운 땅을 힘껏 파고들어 갈 거예요.
쿨투라 신인상 공모전 결과 공모 참여 후기 낙선작  소설 단편소설

자살 실패자들의 피난처, 피터팬이 노래한 환상의 섬, 미친 동화 컨셉으로 구현된 꿈의 유토피아, 오색 조명이 밤마다 휘황찬란하게 반짝이며 선정적인 입간판을 세운 업소가 판치는 곳, 성적인 방종을 허용하고 있는 사회, 모두가 불로소득으로 기생하며 로마 귀족들처럼 매일 같이 사치스러운 향연을 벌리고 있는 난장판, 제대로 된 체계 없이 운영되고 있는 개판, AI가 판사를 하고 인간인 형사가 범죄자 교육까지 하는 상황에서 유치하고 허술한 법을 만들어 나를 개고생시키고 있는 지옥.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것은 혈투가 합법적인 곳이라는 것.
 
낙원의 형사, 코드명 늑대는 낙원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낙원은 <쾌락과 고통으로 살아갈 힘 길러내자!>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이다. 청년 자살률 감소를 목적으로 한다. 국가 형태를 표방한다. 자살을 시도했던 청년 중 일부를 추출하여 그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체류 의무 기간이 지나면 출국할 것인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
 
늑대는 하루라도 빨리 나가는 것이 승자라고 생각했다. 공수래공수거. 빈 몸으로 왔듯 나갈 때도 어떠한 것도 가지고 나갈 수 없으니까. 있을수록 도태될 뿐이니까. 방침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이곳 시간은 20년도에 멈춰있다. 현실과의 접촉도 엄격히 차단하고 있다.
 
늑대는 지금 예술이랍시고 자살을 그렸다가 잡혀 온 화가가 한심했다. 여기서는 자살과 관련한 창작물을 제작했던 때도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 처벌은 신체적인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고강도 운동이나 전기 고문 처분 등이 있다. 자살*출산 시도는 중죄에 해당한다.
 
늑대는 현실에서 생활고에 허덕이다 자살 시도를 했던 화가처럼 허영에 들떠 날아다니다 제 갈 길을 잃은 부류의 인간들을 싫어했다. 이번에 들어 온 지은, 코드명 모글리는 한 수위였다. 요즘 세상에, 심지어 어려운 형편에, 시인을 꿈꾸던 철없는 휴학생이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곳은 서늘한 검은 땅속뿐이에요.
쿨투라 신인상 공모전 결과 공모 참여 후기 낙선작  소설 단편소설

낙원에 온 지은은 위의 문장을 오늘의 표현으로 적었다. 그리고 닫힌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검은 하늘의 자리를 조명들이 깜박이며 탐하고 있었다. 공격적인 전자음이 반복되고 있었다. 오늘의 호스트가 선정한 테마는 세기말 유행했던 테크노였다. 지은은 눈에는 외계에서 온 듯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자기를 부정하려는 듯 도리도리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친 듯이 고갯짓하면, 날갯짓하면, 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는 닭장 속 닭들처럼 보였다.
 
지은도 호기심이 일기는 했다. 한 번쯤은 조명 아래에 서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발을 내디딜 수는 없었다. 사람을 재미 삼아 해하려는 벌레는 어디서나 기어다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은은 낙원에서 정해놓은 운동 시간을 제외하고는 시를 습작하거나 그를 위해 독서를 했다. 원래부터 지은에게 글쓰기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꿈꿀 수 있었던 유일한 기적, 땅속에서 얼어 죽지 않게 했던 따뜻함, 불안을 연료로 삼은 모닥불이었다. 현재는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을 애써 외면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여기서는 허황한 꿈을 꿈꾸고 있다는 비웃음, 재능 없음에 대한 낯부끄러움, 공모전 결과에 따른 쓰라림을 느끼지 않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대인관계 활동 의무는 충족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지은은 주기적으로 담당 공무원과 면담해야 했다. 지은은 이곳에서라도 마음대로 살고 싶었다. 내일 죽더라도 평온한 오늘을 보내고 싶었다. 사람들을 가능한 피하고 싶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지은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곧 비웃음으로, 비열한, 더러운, 성난 얼굴들로 변해갔다.
 
친절했던 담당 공무원도 마찬가지였다. 점차 지은에게 성적인 접촉을 시도했다. 지은은 예전처럼 입술을 깨물며 참아낼 수 없었다. 살짝 손을 대려고만 해도 아물지 못한 상처로 따가웠다. 앙심을 품은 공무원은 지은에 자살을 미화하는 글을 썼다는 등의 죄를 씌었다.
 
지은은 가혹하게 삼켜야 했던 오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정신 놓을 정도의 충격이 가해지더라도 죽는 것밖에 더 하겠느냐고 되뇌며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지은은 취조실 책상에 앉았다. 나무로 된 하얀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이처럼 죽어 그저 단단할 수만 있기를 바랐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지은은 들어오는 형사를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선을 조금씩 올려 늑대를 바라보았다. 견고한 적갈색 벽 같았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멋스러운 조형물로 남을 것 같았다.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또 사고 치면 내가 너 당장 돌려보낸다! 늑대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지은의 흰 책상이, 세상이 암흑이 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돌아갔다. 어둡고 녹이 슨 집, 더 앙상해진 부모님, 차가운 땅바닥, 먼지 쌓인 퀴퀴한 공기, 체납 독촉 고지서가 놓인 그 한가운데로.
 
지은은 훈방돼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도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언젠간 돌아가야만 할 것이라면 어차피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더 이상 애끓고 싶지 않았다.
 
결국 또다시 강물이 흐르는 다리 앞에 섰다. 이제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은은 돌고래처럼 물 위로 다시 튀어 올랐다. 이어 강 옆에 있던 풀숲으로 안착했다. 사이렌이 울리고 구급차와 경찰차가 연이어 왔다. 낙원에서는 자살 시도 범죄에 대한 예방을 철저히 하고 있었다. 강에는 스프링을 내재한 기계 장비를 설치해 두고 있었다.
 
지은은 경찰로부터 긴급 교육 참여 대상임을 통보받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부터 지은에게는 오늘의 표현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간절한 바람만을 반복해 적을 뿐이었다.
 
 

제발, 아무도 들어오지 마세요.
쿨투라 신인상 공모전 결과 공모 참여 후기 낙선작  소설 단편소설

늑대는 얘가 당장에 먹고 사는 게 문제없으니 미쳐 날뛰었다고 생각했다. 좋게 무마해 주었건만, 앞뒤 상황을 조금만 생각해 봐도 무겁게 여길 말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을 법한데도 편협하게 문장 하나에만 골몰했다니 신경질 날 정도로 모자란 애인가 싶었다. 그런 애를 교육하여 괄목할 만한 결과를 보이라는 상부의 지시는 부당했다. 그러나 하는 모양새는 만들어야 했다. 까라면 까야 하니까. 지은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런데 지은은 알록달록한 문부터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지은이 작은 문 틈새로 희멀건 얼굴을 드러내며 겁먹은 듯한 눈망울로 늑대를 바라보았다. 늑대는 지은이 순간 예쁘긴 하다고 생각했다. 이내 자신을, 아기돼지를 잡아먹으려는 늑대, 빨간 망토에 나오는 나쁜 놈 취급하며 무서워하는 것 같다고도 느꼈다.
 
늑대는 납득할 수 없었다. 상부에서는 왜 동화 컨셉을 지향하여 안 그래도 불안정한 사람들의 사고 체계를 세상과 더 등지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살 미수자들이 마약 같은 망상 속에서 삶을 더 지속했다는 결과치만을 뽑아내고자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지은은 사실 늑대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자신이 늑대가 치워야 할 귀찮은 곰팡이가 된 것 같았다. 창피하기도 했다. 늑대는 지은에 밖으로 나오라는 듯 검지를 까딱였다. 지은이 어기적거리며, 살짝 한쪽 발을 내밀며, 조심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사회생활을 개판으로 했더만? 늑대가 지은의 상처를 들춰냈다. 힘없는 것들은 초장에 잡는 것이 효율적이며 효과적이기도 하다는 것이 늑대의 지론이었다.
 
손님 응대가 미숙해서 해고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잘 안됐다! 늑대가 지은의 상처를 주시했다. 지은의 볼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망상 장애가 있는 것 같다! 성범죄를 당했다고 헛소리하고 다녔다! 늑대가 지은의 상처에 손을 댔다. 지은이 얼음처럼 굳었다. 생기 없는 뺨에 가녀린 물줄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리면 아무리 유순해도 자기방어 내지는 하소연하기 마련인데 지은은 숨죽이고만 있었다. 늑대가 보기에 지은은 무였다. 약하다 못해 증발해 버린 듯한 존재, 아무리 세게 쳐도 소용없는 공기였다, 강약약강 이 외의 매뉴얼이 필요했다. 무중. 무 같은 부류는 적당히 달래서 이끌고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진흙에 온몸이 담가져도 샤워 한 번이면 깨끗해진다. 늑대는 지은을 위로하며 손에 공기총까지 쥐어주었다. 지은은 놀란 눈으로 늑대를 바라보았다.
 
지은은 늑대의 손이 따뜻하다고 느꼈다. 늑대가 성벽처럼 대단한 사람,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 내가 평온하길 바라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처음에는 성난 얼굴이었지만 나중에는 자신에 미소를 지어주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러나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늑대를 향한 기대를, 마음을 밀어내려 애썼다. 그를 오늘의 표현으로 기록했다.
 
 

얄팍한 발자국은 싫어요.
마음이 뜯겨나간 부스러기를 나는 버릴 수도 없으니까요.
쿨투라 신인상 공모전 결과 공모 참여 후기 낙선작  소설 단편소설

교육 첫날, 회색 무지 원피스를 입은 지은은 모서리 구석에 서 있었다. 수강생들에게 차차차 동작을 알려주고 있는 자스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릿빛 살결이 노출된 어깨, 딱 붙는 초록색 원피스로 드러나는 굴곡진 허리선, 거기에서 빛나는 스팽글, 자스민은 섬광 같았다. 이어 수강생들을 바라보았다. 각양각색의 옷을 입고 흔들거리고 있었다. 흩날리며 어우러졌다.
 
늑대는 보고를 위해 지은의 발랄한 모습을 찍고 싶었다. 화려한 금빛 옷을 입고 지은에 따라하라는 듯 긴 팔을 휘적이며 열정적으로 춤을 췄다. 그러나 지은은 그를 보며 흠칫할 뿐이었다. 자스민이 지은에 다가와 자세를 잡아주려 하기도 했지만 지은은 그마저도 피했다.
 
똑바로 안 해? 늑대가 화를 내도 지은은 고개 숙여 자신의 발끝만 바라볼 뿐이었다.
 
두 번째 날, 지은은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함께 앉아 있던 여자들의 눈치를 보며 숨을 내고를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늑대가 이번에는 나름 지은의 성향에 맞춘다고 지은을 북 살롱에 데리고 온 것이었다. 지은은 동정과 배척을 응축한 그녀들의 눈빛에 위축되었다. 그녀들의 입에서 얕은 무시의 한숨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질식할 것 같았다.
 
야 내가 너 지금 예쁘다고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냐? 늑대의 언성은 더 높아졌다.
 
지은도 할 수만 있다면 밝은 척 다른 사람과 대화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상대가 나에 대해 모른다, 편견이 없다, 우호적일 것이다. 주문을 외워도 자기 말을 그대로 튕겨낼 것 같았다. 자기를 모함할 여지를 줄 것만 같았다.
 
야 내가 대체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겠냐? 늑대가 지은을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
 
세 번째 날, 늑대는 얼굴을 가리면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지은을 가면무도회로 이끌었다. 금빛 드레스를 입은 지은이 긴 소매를 펄럭이며 하얀 깃털 가면으로 얼굴을 감추었다. 불긋한 조명 아래에도 서 보았다. 그러나 난간에 서 있는 듯 불안했다. 남루한 실체가 들춰질 것만 같았다. 항상 많은 시선을 받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고는 했다.
 
그럼에도 용기를 냈다. 사람들에 무슨 말이라도 해보기로 작심했다. 얼굴이 드러나는 하얀 레이스 가면에 무릎 아래부터 물고기처럼 퍼진 에메랄드빛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은 인어공주에 다가갔다. 흰 조개껍질 같은 그녀에 말을 건네려는데, 그 순간 껍질 안에 감추고 있었던 그녀의 질투 어린 눈빛을 보고야 말았다. 지은은 애써 웃으며 구석으로 향했다.
 
깡통 로봇으로 분한 양철 나무꾼이 지은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지은은 턴을 돌며 다른 모서리로 이동했다. 지은은 무도회장에 큰 원을 그리듯 움직이며 다가오려는 이들을 피했다. 마침내 지은은 서로 다정한 군중 속에서 인형처럼 멀뚱히 서 있었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지은이 술기운에 순간 흔들거렸다. 늑대가 다가와 지은의 손목을 붙들었다. 뒤편 숲으로 데려갔다.
 
초록 숲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늑대가 늑대탈을 벗으며 흥분한 얼굴로 지은에게 제정신이냐며 소리쳤다. 늑대의 은빛 정장이 가로등 빛에 반짝거렸다.
 
사실 늑대가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을 최선으로 해야 하는 약자인 지은이 처지에 맞지 않게 행동하였으니, 그에 따라 원치 않는 상황에 놓인다고 할지라도 지은은 누구를 탓해서는 안 될 뿐이었다. 특히나 성적인 방종이 묵인되는 낙원에서 술에 취하는 것은 성적 접근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늑대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자들을 한심하게 보았다. 그들의 안일함을 경멸했다.
 
그런데 지은에게는 걱정스러움이 앞섰다. 늑대는 그런 자신을 납득할 수 없었다. 지은이 상처받을 경우 교육 프로그램 진행에 있어 차질이 있을 것이란 계산이 선행된 것으로 정리했다.
 
형사님은 웅장한 집 같아요. 술에 취한 지은이 웃는 얼굴로 양손을 맞대어 집 모양을 만들며 말했다.
 
이어 지은이 오른쪽 검지로 기억을 동시에 왼쪽 검지로 니은을 그리며, 미음, 창문을 완성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늑대를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근데 안은 심플해, 따뜻해, 멋져.
 
늑대는 지은이, 묘한 떨림이 당황스러웠다. 벗어나야 했다. 약자와의 정신적 교류, 이득이 될 것 없는 감정적인 소모는 백해무익하므로 당연했다. 어차피 나가면 사람들이랑 부대껴야 하는데, 여기서도 이렇게 말도 안 섞으면 어쩌냐. 늑대는 말을 돌려 지은을 회유했다.
 
지은이 울컥하며 주저앉았다. 나는 만만하니까요. 사람들이 내 말이라면 다 무시하고, 과장하고, 왜곡하고, 그걸로 조롱하고, 욕하니까요. 그러니까 다 싫은 거예요. 그래도 형사님은 좋아. 지은이 하늘거리며 꽃들 속에 가지런히 누웠다. 눈을 감았다.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제발 여기서라도 편안하게 있고 싶다고 빌었다.
 
늑대는 지은을 한 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안아 들었다. 두려웠다. 지은을 안은 손이 떨렸다. 바빠 죽겠는데 도움이 될 것 없는 이 작은 것 하나를 진정으로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겨 버린 것 같았다. 다 원활한 교육 진행 및 성과를 위한 마음이라 애써 결론지었다.
 
너는 뭐 문제없다고 생각하냐?! 너 말 좀 똑바로 좀하고! 특히 너 본인 맘대로 생각하는 거! 너 그거 꼭 고쳐야 한다, 그거! 본인이 찍어 누를 힘도 없으면서 한 줌도 안 되는 게 그냥! 늑대는 이미 잠들어 있는 지은을 탓하며 다그쳤다. 늑대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드레스 차림으로 침대에서 깨어난 지은은 전날 밤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협탁에 늑대가 남겨 둔 작은 메모를 발견했다. 이제 특별훈련을 진행할 것이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적혀있었다. 지은은 밝게 웃었다. 책상에 있는 노트를 펼쳐 오늘의 표현을 적었다.
 
 

나를 무섭게 하면서도, 태워죽일 듯 굴면서도, 결국은 따사롭게 하네요.
쿨투라 신인상 공모전 결과 공모 참여 후기 낙선작  소설 단편소설

첫 번째,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
 
먼저 늑대는 지은에게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토끼 같은 내 새끼 꽃 같은 내 동생이나 애인의 얼굴에 그늘지게 하면 깽판이라도 치러 올 만한 인간이 튀어나올 것처럼 굴어야 한다고 했다.
 
마음의 그늘을 숨기지 못할 것이라면 흔들리지 않는 묵직한 그늘이 되라고 했다. 피하지 말고 차라리 차가워지라고 했다.
 
늑대는 지은에 자신의 눈부터 똑바로 당당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며 지은을 노려보았다. 지은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늑대는 지은을 무심히 보다가 너 같은 얘는 나 같은 놈 이용해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어떨 때는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질 줄 알아야 한다. 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네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은 달라진다고, 먼저 자신감 있게 행동하면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라 지은을 북돋아 주었다.
 
두 번째 강인한 기운과 정신적 여유는 체력에서 나온다, 공격도 방어도 힘이 있어야 한다.
 
늑대는 지은을 데리고 산에 올랐다. 크고 단단한 나무줄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은은 이 나무들처럼 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얕게 신음하며 힘겹게 늑대의 뒤를 쫓아갈 뿐이었다.
 
늑대는 인생이 평탄하지 않은데 굴곡 없는 길만 걸으려 해서는 되겠냐며 힘겨워하는 지은을 채찍질했다. 그러면서도 뒤에서 밀어주었다. 지은은 순간 섬찟했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두근거리는 기분에 하늘을 보며 숨을 짧게 내쉬었다. 그제야 위로 붉게 드려진 단풍잎들이 보였다.
 
이내 늑대는 지은을 다독였다. 지금 힘든 순간의 감정만 잘 다스리라고 했다. 더 이상 못 하겠으면 말하라고 했다. 본인이 업고 가겠다고. 그러나 멈추지는 않았다. 지은의 얼굴이 점차 창백하게 질렸다. 결국 지은이 다리에 힘이 풀려 쓰려졌다.
 
말을 하라고 말을!! 늑대가 지은을 안쓰럽게 보며 다그쳤다.
 
세 번째 잔인한 것도 볼 줄 알고 때에 따라서는 냉혹할 수도 있어야 한다.
 
늑대는 지은에 사냥을 가르쳐주려 했다. 함께 살랑거리는 갈대숲에 나란히 누워 총을 들고 전방을 주시했다. 늑대는 지은에 공격할 땐 해야 한다. 덤비려면 상대를 꺾을 수 있을 만한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놈한테는 나 죽었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탕! 지은이 늑대의 총소리에 크게 놀랐다. 늑대가 지은의 양어깨를 감싸주었다. 지은은 늑대를 바라보며 다시금 불같은 사람이라, 거칠게 일렁이지만 따뜻하다고 느꼈다.
 
늑대는 이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자기도 모르게 지은을 보호하려는 행동을 자꾸 하고 있었다. 현실에 두고 온 여동생 대하듯 지은을 위하고 있었다. 하잘것없는 감정에 휩싸여 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육만 끝나면 모두 다 허공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붙잡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넘겼다.
 
놓아주시면 안 돼요? 산토끼들이 늑대가 놓은 덫에 걸려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지은이 마침내 입을 떼며 말했다. 늑대는 피식 웃으며 산토끼들을 방생해 주었다. 그러면서 신이 난 듯 여러 기술을 알려 주었다. 함정을 파 놓으면 영리하게 피해야 한다, 못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제 발로 빠지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라. 날뛸수록 그들에 명분만 더해줄 뿐이다.
 
지은은 집에 돌아와 늑대가 해준 말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기록했다. 그런데 지은은 늑대가 말한 대부분의 방법은 그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사이즈의 제복 같았다. 주제넘게 입었다가는 우스꽝스러울 것이라, 계속 넘어지고 다치기만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낙원 밖 현실의 삶에 대한 의욕이 샘솟았다. 하루하루가 들뜨고 설렜다. 그 기분을 오늘의 표현으로 남겼다.
 
 

몸이 녹아 점점 위로 떠오르는 것 같아요.
쿨투라 신인상 공모전 결과 공모 참여 후기 낙선작  소설 단편소설

지은은 꿈을 꾸는 듯했다. 청아한 가을 내음을 맡으며 어두운 암흑에 내려진 별빛을 올려다보았다. 앞에 일렁이고 있는 붉은 모닥불과 그 빛에 맑게 반짝이고 있는 윤슬을 바라보았다.상처받을 각오를 미리 단단히 해두는 거예요. 나중에 아프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할 사람들에만 마음을 주는 거예요, 곁에 앉아 있는 늑대를 의식하며 말했다.
 
지은의 방법은 원래 가진 자기 모습에 약간의 방어막을 더하는 것이었다. 앙상한 나무에 헝겊을 입하는 것, 강단과 자신감 있는 태도를 더하는 것이었다.
 
말을 이어갔다. 부모님처럼요. 아무리 미웠어도 아프고 힘드시니까 나 혼자 살겠다고 외면할 순 없던 마음처럼, 뭐 그 정도 마음은 아니더라도. 말을 끊고 늑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늑대가 지은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내 흥분하며 말했다. 중증장애인이면 부양의무자 기준 적용 안 된다고, 부양의무자가 해외에 있으면 심의 거쳐서 지원금을 받을 수도 있다고, 나중에 오빠에 연락이 안 된다고 안 받아주면 깽판이라도 치라고, 아니면 인터넷에 글이라도 올리라고, 제발 살려 달라 발악 하라고 했다. 네가 나가도 걱정이라며 한탄했다.
 
지은이 늑대를 보며 웃었다. 앞으로는, 나가서는,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할 말도 다 하고 살 것이라 했다. 늑대가 지은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지은이 갑자기 울컥했다. 것도 정말 내 탓이 아니었다고, 누가 음주 운전을 해서 내 온몸이 부서졌는데 아프다고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왜 어두운데 돌아다녔냐 하면 늦게까지 일했던 게 내가 사고를 당하려고 그랬던 게 아니었다고 말해야 하지 않느냐고, 피해자인 게 조롱받고 협박받을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토하듯 쏟아냈다. 붉어진 자기 얼굴을 하얗게 되돌리려는 듯 맑은 눈물을 세차게 흘리면서 닦아냈다. 늑대는 지은을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자기 턱을 세게 깨물 뿐이었다.
 
한참을 울던 지은이 눈물을 그쳤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늑대에 손을 건넸다. 늑대는 당황하며 헛기침했다. 이내 어색하게 지은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은이 자신만의 방법을 찾은 것은 늑대 덕분이었다. 늑대 때문에 다치게 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늑대는 따뜻했다. 바라보면 힘이 났다. 없던 에너지가 생겼다,
 
다음날부터 지은은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한 번의 표절로 그 간의 명성을 단숨에 흩날려버린 당대 최고의 작가였던 코드명 샤흐라자드부터 찾았다. 늑대가 강한 사람 앞에서는 알아서 기어야 한다고 했지만 지은은 자신의 방식대로 솔직히 표현해 보고 싶었다. 상처받는다고 하더라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실제 모습을 모르는 작가들의 소설에서 진심을 느꼈듯, 자신의 오롯한 마음이라면 샤흐라자드도 그를 알아주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지은은 숨을 가다듬은 후 샤흐라자드에 당돌히 말했다. 예전만큼 존경하고 싶으니 다신 그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 달라고, 제발 앞으로도 글을 계속 써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샤흐라자드는 지은의 말이 사막에서 말라 죽어가던 찰나에 정신 차리라고 부어 준 찬물 같았다고 말했다. 이후부터 샤흐라자드는 스승으로서, 어른으로서 지은을 품어주었다.
 
이후 지은은 더 많이 말하고, 움직이고, 웃었고. 배웠다. 열심히 살아있었다. 사람들과 함께하며 종종 상처받기도 했지만, 옹이가 자라는 중이라, 뒤늦게 생장하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곁에는 언제나 늑대가 있었다. 지은은 낙원에서의 마지막 오늘의 표현을 적어 내려갔다.
 
 

결국 지상으로 다시 올라왔어요. 나의 새로운 빛, 태양 덕분에.
쿨투라 신인상 공모전 결과 공모 참여 후기 낙선작  소설 단편소설

지금껏 사람 사이에서 아팠던 건 이곳 사람들, 누구보다 형사님을 만나기 위함이었던 것 같아요. 함께 있으면 이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이 나가요. 지은이 늑대에 고백했다.
 
늑대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토사구팽, 좌천돼서 온 거라 나갈 수 있는 날을 기약할 수 없다고 했다. 그에 지은은 늑대라면 하염없이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이내 솔직히 말해 달라며, 자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인지를 주눅이 든 얼굴로 물었다.
 
늑대는 후회했다. 늑대는 지은을 사회에 복귀시키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리라는 것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교육 일정이 끝난 뒤에도 지은과 늘 함께했던 것이었다. 지은이 자신에 대한 마음을 훌훌 털어 버리게 하기 위해서는 자수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 경찰이다. 증거 있냐. 왜 따라갔냐. 돈 많은 남자 한 번 물어보려던 거 아니냐. 어차피 금방 풀려난다. 뒷감당할 자신 있냐. 그냥 위로금 받고 좋게 끝내자. 너 같은 애들 입 틀어막은 게 나 같은 인간이다, 그러니 미련 없이 나가라. 늑대가 작정한 듯 말했다.
 
지은은 늑대가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말을 이해하지 못 한 멍청한 얼굴로 늑대를 바라보았다. 늑대가 그런 지은을 보다가 이내 울컥하며 무너졌다.
 
가진 건 몸뿐이라, 눈 부릅뜨고 기회 잘 잡아서, 치열하게 기어서, 가차 없이 밟아서. 어떻게 해서든 식구들 먹여 살리려고 그랬다고. 자신도 밟혀가면서, 속여가면서, 비참하게 살았다고, 지은과 지내면서 피해자들이 느꼈을 가혹한 고통을, 피해자들을 사랑하던 이들이 느꼈을 힘겨움을, 자신이 범했던 잘못의 무게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하며 울었다.
 
지은은 뒤로 돌았다. 전부 다 부정하고 싶었다. 배신감에 겨우 아물었던 상처가 다시 터졌다. 쓰라렸다. 진물이 심장까지 스며든 것 같았다. 온몸이 너덜너덜해졌다. 죽은 듯 며칠을 잠들었다. 긴 잠에서 깨어난 지은은 늑대에 편지를 썼다.
 
[쉽지는 않겠지만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그 사람들을 용서해 볼까 해요. 그리고 나에게는 말하라고, 발버둥 치라 했으면서 왜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우리 같이 뭐라도 해봐요.
 
지은은 도저히 늑대를 쭉 그어 도려낼 수 없었다. 남의 심장을 파먹으며 살아남았던 늑대가 앞으로 더 받아야 할 벌을, 겪어야 할 일들을 곁에서 함께 감내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지은은 먼저 낙원에서 돌아왔다. 나무가 보이는 도서관 창문 옆자리가 전부였던 학창 시절의 연장선을 피날레 불꽃놀이로 그려 매듭지은 기분이 들었다. 나무처럼 사람을 정화하는 글을 쓰겠다는 꿈을 꾸었던 때, 자신의 꿈에 나무와 같이 쭉쭉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세상의 아름다움이 되라고 했던 시절을 지난 것이었다.
 
높은 이상으로 꿈을 학대하기에는 너무 소중했다. 이제는 제발 건강만 하라고, 오래 살라고, 나는 죽어도 너는 살라고, 나의 영혼이자 상징이 되라고 잔잔히 말하고 있다.
 
지은은 이제 조금 더 구체적이고 긴 이야기도 써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지은이 시를 고집해 왔던 것은 글에 자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표현도 여기서 일단락 짓기로 했다.

 
 
암흑에서 태양의 빛을 발견하고 돌아왔어요.
알아서 자라나는 무인도의 나무, 자기만의 생존법을 가지고 태어난 이 나무는,
그 비법을 기적적으로 찾아냈어요,
나무의 생존법에는 울며 씨앗을 깬 고통으로 얻은 생존권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이 섬을 창조하신 요정님,
내가 지상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이제 죽은 잎은 흙에 묻도록 할게요.
깨치고 다시 발아하며 나와, 더 너른 시야로 힘차게 달려 나아갈게요.
이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요.
날 태울 듯 떠오르는 태양이, 내 안에 비추는 사랑이, 종종 나를 찾아와 줄 거니까요.
제목. 나무가 살아가는 섬.
 
 

다음 날, 지은은 낙원에서 경험한 일들을 소설의 형태를 빌려 사람들에게 전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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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놀랍게도 책을 종종 읽는다.
2. 심지어 단편소설이라는 것을 읽어보았던 적도 있다.
3. 낙선자분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려 한 의도는 없다.
4. 나는 아직도 가끔 파워블로거를 꿈꾼다.
5. 거의 맨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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